퀀트투자를 시작할 때 꼭 점검할 5가지 기준

1. 퀀트투자는 감정을 없애는 투자가 아니라 감정을 늦게 쓰는 투자
얼마 전 지인과 시장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퀀트투자는 숫자가 알아서 사주고 팔아주는 거니까 마음이 편하지 않나요?” 12년 넘게 주식과 환율, 금리 흐름을 매일 보다 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퀀트투자는 감정을 없애는 방식이라기보다, 매수와 매도 전에 감정을 최대한 밀어내고 규칙을 먼저 세우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저PER, 저PBR, 고ROE 같은 팩터를 조합해 종목을 고르는 전략이 있다고 해보죠. 숫자로 보면 깔끔합니다. PER 8배 이하, PBR 1배 이하, ROE 10% 이상. 그런데 막상 그 조건에 들어오는 종목들은 시장에서 인기가 없거나 업황 우려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투자자는 다시 흔들립니다. “싸긴 한데 더 빠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퀀트투자의 출발점은 공식 자체보다, 그 공식이 어떤 시장 국면에서 버티기 어려운지를 아는 데 있습니다. 숫자가 매수 후보를 좁혀주지만, 그 숫자를 견디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2. 백테스트 수익률보다 먼저 봐야 할 3가지
퀀트 전략을 접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연평균 수익률입니다. 연 15%, 연 20% 같은 숫자는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실제 운용에서는 수익률보다 더 먼저 봐야 할 지표가 있습니다.
- 최대낙폭: 고점 대비 얼마나 깊게 빠졌는지
- 회복 기간: 손실 이후 원금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
- 거래비용: 수수료, 세금, 슬리피지가 반영됐는지
예를 들어 어떤 전략이 10년간 연평균 18%를 냈다고 해도 중간에 -45%를 경험했다면, 실제 투자자는 그 전략을 끝까지 들고 가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연평균 11%라도 최대낙폭이 -18% 수준이고 회복 기간이 짧다면 자금 배분 관점에서는 더 현실적인 전략일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 주식은 거래대금이 작은 중소형주에서 백테스트 성과가 과장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화면 속 과거 수익률은 종가 기준으로 체결됐다고 가정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가격에 원하는 수량을 모두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래대금 필터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 조건에 가깝습니다.
3. 퀀트투자에서 자주 쓰는 팩터 4가지
퀀트투자에서 팩터는 종목을 고르는 기준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보상을 받아온 성격을 숫자로 정의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는 가치, 퀄리티, 모멘텀, 저변동성이 있습니다.
가치 팩터
PER, PBR, EV/EBITDA처럼 기업의 이익이나 자산 대비 가격이 싼 종목을 찾는 방식입니다. 금리가 높고 유동성이 줄어드는 국면에서는 성장주보다 가치주의 상대 매력이 부각될 때가 있습니다. 다만 싼 데는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업황이 구조적으로 꺾였거나 이익의 질이 낮다면 단순 저평가로 보기 어렵습니다.
퀄리티 팩터
ROE, 영업이익률, 부채비율, 현금흐름 등을 활용합니다. 같은 저평가 종목이라도 재무구조가 안정적인 기업을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질 때는 퀄리티 팩터가 방어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멘텀 팩터
최근 3개월, 6개월, 12개월 수익률이 좋은 종목을 고르는 방식입니다. 시장은 생각보다 추세가 오래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급락장에서는 모멘텀이 빠르게 무너질 수 있어 손절 또는 리밸런싱 규칙이 중요합니다.
저변동성 팩터
가격 변동이 상대적으로 낮은 종목을 선호합니다. 화려한 수익률을 기대하기보다는 포트폴리오의 흔들림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장기 운용에서는 수익률 못지않게 변동성을 낮추는 것이 복리 효과에 영향을 줍니다.
4. 시장 국면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이유
퀀트 전략은 모든 시기에 똑같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좋은 전략도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시기에는 미래 이익을 크게 반영하는 고성장주보다 현재 이익과 현금흐름이 보이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유동성이 풍부하고 위험 선호가 강한 시기에는 저평가 가치주보다 모멘텀이나 성장 팩터가 앞서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율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구간에서는 외국인 수급이 흔들리고, 수입 원가 부담이 큰 기업의 이익 전망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같은 퀀트 모델이라도 대형 수출주 비중이 높은지, 내수 중소형주 비중이 높은지에 따라 성과 차이가 커집니다.
그래서 저는 퀀트투자를 볼 때 단일 전략보다 조합을 더 선호합니다. 가치만 보거나 모멘텀만 보는 방식은 특정 국면에서 강하지만, 반대로 특정 국면에서는 꽤 오래 소외될 수 있습니다. 가치 40%, 퀄리티 30%, 모멘텀 20%, 현금 또는 채권성 자산 10%처럼 성격이 다른 요소를 섞으면 성과 곡선이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5. 개인투자자가 현실적으로 가져갈 실행 기준
퀀트투자는 복잡한 코딩이나 고가의 데이터가 있어야만 가능한 영역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투자자에게 중요한 건 단순하고 반복 가능한 규칙입니다. 너무 정교한 전략은 처음에는 멋져 보이지만, 데이터 오류와 과최적화에 취약해집니다.
- 리밸런싱 주기는 월 1회 또는 분기 1회처럼 미리 정한다
- 종목 수는 최소 15~30개 이상으로 분산한다
- 거래대금이 너무 작은 종목은 제외한다
- 상장폐지, 관리종목, 적자 지속 기업에 대한 필터를 둔다
- 전략이 6개월 부진하다고 바로 폐기하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기준이 중요합니다. 좋은 전략도 시장과 맞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가치 전략은 성장주 장세에서 답답하고, 모멘텀 전략은 급격한 변동성 장세에서 손실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시작하면 전략 문제가 아니라 국면 문제인 상황에서도 투자를 접게 됩니다.
솔직히 퀀트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남들보다 똑똑한 종목을 찾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이유로 사고, 어떤 조건에서 팔며, 어느 정도 손실까지 감당할지 미리 정해둔다는 데 있습니다. 시장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만, 계좌를 지키는 힘은 대체로 오래 반복할 수 있는 규칙에서 나옵니다. 퀀트투자는 그 규칙을 숫자로 적어두는 투자 방식에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