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완 박사 경고를 읽는 4가지 반도체 지표

얼마 전 반도체 관련 인터뷰를 다시 읽다가 이주완 박사의 ‘9월 이전 피크아웃’ 경고에 눈이 멈췄다. 2026년 5월 당시에는 메모리 업황이 한창 좋았기에 더 눈에 띄는 발언이었다. 이제 10월이다. 예고한 시점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경고를 지울 수도, 주가가 흔들리는 하루를 골라 맞았다고 할 수도 없다. 무엇이 꺾일 것으로 봤는지부터 나눠 봐야 한다.
이주완 박사는 SK하이닉스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산업 분석가다. 그의 경고는 AI 수요가 사라진다는 주장보다는, 공급이 늘고 가격 흐름이 바뀌면 좋은 실적과 주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 시장을 매일 보다 보면 이런 시간차가 꽤 중요하다. 실적 발표는 지난 분기를 설명하지만, 주가는 다음 분기의 변화를 먼저 반영하려 하기 때문이다.
1. 현물가와 계약가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가
메모리 가격을 볼 때 먼저 구분할 것은 현물가와 계약가다. 현물가는 비교적 작은 물량이 거래되는 시장의 가격이고, 계약가는 대형 고객과 공급사가 협상해 정한다. 현물가가 먼저 약해지고 계약가는 몇 달 뒤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이 박사가 5월 인터뷰에서 실적이 좋아 보여도 주가가 먼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배경에도 이 시차가 있다.
그런데 9월 말과 10월 초에 나온 트렌드포스 자료는 모든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4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전 분기보다 10~1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10월 초 현물 거래는 조용했고 가격 움직임도 크지 않았다. 계약가격 상승세가 둔화하는 것과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것은 다른 단계다. 지금은 두 가격의 간격이 앞으로 어떻게 좁혀지는지 확인할 때다.
2. 공급을 늘려도 실제 물량이 바로 늘어나는가
반도체 업황이 좋으면 증설 발표가 이어진다. 이때 발표된 투자액을 곧바로 시장에 풀릴 물량으로 계산하면 판단이 어긋난다. 공장을 지어 장비를 들이고 수율을 안정시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같은 생산능력이라도 어떤 제품에 배분하느냐에 따라 범용 D램 공급량은 달라진다.
HBM은 특히 이 계산을 복잡하게 만든다. 트렌드포스는 주요 업체의 전체 D램 웨이퍼 투입량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5년 말 약 18%, 2026년 말 약 22%로 추정했다. HBM 쪽 투입이 늘면 범용 제품에 쓸 수 있는 생산능력이 줄어든다. 그래서 전체 투자가 늘어도 일반 D램은 한동안 부족할 수 있다. 이 박사의 공급과잉 우려를 점검하려면 증설 발표뿐 아니라 HBM과 범용 제품 사이의 생산 배분, 실제 출하량을 함께 봐야 한다.
3. 수요가 강한 곳과 약한 곳을 구분할 수 있는가
‘AI 수요가 좋다’는 말은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PC와 스마트폰까지 같은 속도로 메모리를 사들이는 것은 아니다. 트렌드포스의 9월 말 전망에서도 AI 서버 수요는 가격 상승을 뒷받침했지만, 소비자 제품은 높아진 부품값과 약한 수요로 부담을 받고 있었다. 메모리 시장 안에서도 고객에 따라 체감 온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여기서 봐야 할 것은 구매량의 지속성이다. 클라우드 업체가 장기 계약으로 물량을 확보하면 공급사에는 수요를 예측할 여지가 생긴다. 동시에 고객이 재고를 넉넉히 쌓은 뒤 구매 속도를 늦추면 신규 주문은 예상보다 빨리 약해질 수 있다. 서버 수요가 PC·스마트폰의 부진을 얼마나 오래 메워 주는지, 재고와 주문 흐름을 같이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4. 좋은 실적과 좋은 주가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실적이 강하다는 사실 자체를 가볍게 볼 필요는 없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AI 메모리와 고부가 D램 판매 확대, HBM4 출하를 설명했다. 이는 당시 고객 수요와 제품 경쟁력이 실제 매출에 반영됐다는 근거다. 다만 지난 분기 실적만으로 앞으로의 주가 수준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다음 분기에도 이익이 늘지만 증가 폭이 줄어든다면, 시장은 이를 성장 둔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현물가가 잠시 멈춰도 장기 계약 물량과 고객 투자가 유지된다면 이익 전망은 쉽게 꺾이지 않을 수 있다. 주가를 볼 때는 매출액 하나보다 가격 상승률, 출하 증가율, 영업이익률의 방향을 함께 놓고 보는 편이 낫다.
내가 이주완 박사의 경고에서 계속 가져갈 부분은 ‘고점 날짜’보다 가격과 실적 사이의 시간차다. 현물가가 약해지고 계약가격도 뒤따라 내려가며 고객 주문까지 줄면 경고에 무게가 실린다. 계약가격이 오름세를 유지하고 서버 수요가 생산 증가분을 흡수하면 업황은 더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어느 한 전망에 기대기보다, 다음 가격 협상과 실제 주문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지 차분히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